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사벨 2세 (문단 편집) === 불안정한 치세 === 어린 여왕은 어렵사리 왕위를 지켰지만 카를로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840년 진보당을 이끄는 발도메로 에스페르테로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여왕의 모후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섭정 자리에서 물러나 망명했고, 에스페르테로가 대신 섭정이 되어 급진주의 정책을 펴다가 3년 뒤인 1843년 마리아 크리스티나파 장군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실각하고 말았다. 새로 구성된 내각은 의회가 섭정을 두지 않고 여왕이 친정하는 것을 인정하도록 했는데, 이때 여왕은 '''13세'''이였다. 친정은 1868년까지 25년간 계속되었지만 그동안 장군들이나 정파들이 서로 대립하는 와중에 쿠데타가 계속되고 집권당이 교체되는 등 정국은 매우 불안정했다. 하다못해 이런 와중에 이사벨 2세가 구심점 역할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조금이라도 나았겠지만, 여왕은 일관성 없는 태도로 정치에 개입해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양쪽을 오가며 보수반동 정치를 해 국민의 평판이 바닥을 쳤다. 여왕의 치세 중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으로는 [[나폴레옹 3세]]와 연합해 멕시코 제국을 지지한 것과 1859년 [[모로코]]와의 전쟁으로 영토 일부를 확보한 것, [[멕시코]]와 [[쿠바]]를 둘러싼 [[미국]]과의 관계 악화 등이 있다. 미국으로 도주한 선상노예를 두고 미국과 대립한 [[아미스타드 호 사건]]이 이 때 일어났다. 이사벨 2세의 재위기간 35년 동안 6개의 헌법, 41개의 내각, 15번의 군대 봉기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종합하면 내치는 잦은 정쟁으로 실패하고 외치는 불안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